영원한 '곰가방' 핌 베어벡이 한국축구에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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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곰가방' 핌 베어벡이 한국축구에 남긴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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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축구 역사의 한 페이지를 함께했던 핌 베어벡(네덜란드) 전 감독이 암 투병 끝에 별세했다. 향년 63세. FIFA(국제축구연맹)는 지난 29일 공식 홈페이지를 통하여 베어벡 감독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모국인 네덜란드와 대표팀 감독을 역임했던 호주 등 외신들도 앞다투어 베어벡 감독을 추모하고 있다.

베어벡 감독은 한국축구팬들에게도 결코 잊을수 없는 인물이다. 지난 2002년 한국이 월드컵 4강 신화를 이룩할 당시 거스 히딩크 감독을 돕는 수석코치로 활약했으며 2006년에도 딕 아드보카트 감독을 보좌하며 독일월드컵까지 두 번의 대회를 한국축구와 함께 했다. 2006년부터 2007년까지는 아드보카트의 후임으로 1년여간 한국축구 대표팀 사령탑 자리에 올라 성인팀과 올림픽대표팀을 겸임하기도 했다.

이른바 히딩크를 시작으로 본프레레-아드보카트로 이어지는 이른바 한국축구 '2000년대 네덜란드 커넥션 시대'의 마지막을 장식한 인물이다. 여담으로 195cm의 거구로 역대 한국축구대표팀 사령탑 중 최장신이기도 했다.

그의 전성기

베어벡 감독은 현역 시절 모국인 네덜란드리그 로다 JC, NAC 브레다, 스파르타 로테르담 등에서 공격수로 활약했지만 이름을 크게 날린 스타급 선수는 아니었다. 25세의 이른 나이에 현역 생활을 은퇴하고 일찍 지도자의 길에 접어든 베어벡은 네덜란드는 물론, 독일, 일본, 한국, 호주, 모로코, 오만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각 대륙의 클럽팀-국가대표팀-연령대별 대표팀을 넘나들며 38년간 무려 20여개팀에 가까운 팀을 경험한 '저니맨 지도자'로 활약했다.

지도자로서 베어벡 감독의 본격적인 비상은 한국축구와 함께한 2002 한일월드컵이었다. 히딩크 사단의 일원으로 함께 한국무대를 밟게된 베어벡은 뛰어난 정보 분석과 전술능력을 바탕으로 히딩크의 절대적인 신임을 받으며 오른팔로 활약했다. 네덜란드식 토탈사커를 기반으로 하여 적극적으로 공간 장악을 추구하는 압박축구, 후방으로부터의 체계적인 빌드업, 일자형 포백 수비의 도입 등 지금은 현대축구의 보편적인 트렌드로 자리잡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생소했던 축구스타일을 도입하는데 히딩크와 함께 큰 영향을 미친 인물이다. 특유의 소탈하고 온화한 성격으로 한국 선수들 및 스태프들과의 관계도 매우 좋았던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대표팀 감독 시절은 짧지만 명암이 극명하게 교차한다. 2006 독일월드컵에서 1승1무1패의 성적을 남기고 떠난 아드보카트 감독의 뒤를 이어 성인팀과 올림픽팀 감독까지 겸임하며 야심차게 출발했지만 정작 베어벡 감독의 재임 시절은 내내 순탄하지 못했다. 베어벡 감독은 선수차출 문제를 놓고 K리그 및 언론과 여러 차례 갈등을 빚었고, 대표팀의 경기력 면에서도 엇갈린 평가를 받았다. 2002 한일월드컵 4강신화의 여운이 아직 강하게 남아있던 시절이라 대표팀에 대한 기대치가 과도하게 높았던 것도 '히딩크의 후계자'로 여겨졌던 베어벡 감독에게는 부담으로 작용했다.

한국 대표팀에서 베어벡 감독의 마지막 무대가 된 2007 AFC 아시안컵에서 베어벡호는 6경기에서 단 1승, 3득점의 빈공에 그치고도 4강까지 오르는, 기적에 가까운 성적을 올렸다. 당시 대표팀은 이란과의 8강전부터 이라크와의 4강전. 일본과의 3-4위전까지 토너먼트 3연속 무득점 승부차기라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일본과의 마지막 경기에서는 심판 판정에 항의하다가 홍명보 코치와 함께 퇴장까지 당하며 끝까지 벤치에 앉지도 못했다. 다행히 한국은 골키퍼 이운재의 선방에 힘입어 승부차기 끝에 3위를 기록하며 유종의 미를 거뒀다.

2007 아시안컵은 베어벡 감독 입장에서는 여러 모로 꼬여버린 대회였다. 하필 대회 개막 시점과 맞물려 박지성-이영표-설기현-김남일 등 전력의 핵심 선수들이 모조리 부상으로 합류가 불가능해졌다. 아시아권에서도 항상 두 명의 수비형 미드필더를 동시에 기용하는 수비적인 전술은 가뜩이나 단조로운 공격력의 약화를 초래했다. 대회가 좀 지난 후의 이야기지만 당시 이운재-이동국-우성용-김상식 등 베테랑 선수들이 대회 기간에 현지 술집을 드나든 음주 파동이 뒤늦게 알려지며 중징계를 받는 등 선수단 관리에서도 문제가 있음이 드러나기도 했다.

베어벡 감독은 대회 종료 직후 돌연 사퇴를 선언했다 본인이 직접 밝힌 바로는 K리그와의 일정 조율 및 선수 차출 과정에서의 계속된 갈등이 결정적인 배경으로 알려졌다. 당시 허정무 전남 감독(현 프로축구연맹 부총재), 김학범 성남 감독(현 23세이하 대표팀 감독)은 베어벡 감독과 공개적으로 대립각을 세우기도 했다. 이로 인하여 베어벡 감독이 히딩크나 아드보카트같은 전임들에 비하여 인지도가 떨어진다는 이유로 한국축구계에서 '텃세''를 당하는게 아니냐는 동정론도 나왔다.

시련 극복하며 최선을 다했던 지도자

베어벡 감독이 전격 사퇴하면서 한국축구의 '기형적인 대표팀 응원 문화'와 'K리그 홀대' 현상을 질타했다는 발언이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한국 국가대표 축구 팬이라 주장하는 몇몇 사람들은 정말 말도 안 되는 환상에 젖어 있다"며 당시 베어백은 "평소 축구를 위해서 아무 것도 안 하면서 자신들의 대표 팀은 언제나 브라질처럼 플레이하기를 원한다. 또 자국 리그는 외면하면서 세계적인 선수가 나오길 갈망하고 선수들이 부진하면 그들을 범죄자보다 더욱 혹독하게 비난한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정작 베어벡 감독은 이런 인터뷰를 했던 기록이 없다. K리그를 열렬하게 지지하는 누리꾼의 창작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실 내용을 들여다보면 뭔가 앞뒤가 맞지않는다는 것을 쉽게 눈치챌수 있다. 정작 베어벡 감독은 오히려 K리그가 대표팀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협조해주지 않는다며 불만을 토로하는 입장에 가까웠다. K리그 구단과 감독들이 베어벡 감독과 선수차출 문제로 갈등을 빚었던 것도 단지 만만한 외국인 감독에 대한 텃세라는 측면보다는, 2002 월드컵 이후로도 K리그가 대표팀을 위하여 일방적인 희생을 강요하는 관행에 대하여 불만과 문제의식이 누적되어 온 게 사실이다. 그것이 폭발할 시점이 하필 베어벡 감독이 사령탑을 맡고있던 시점과 맞물린 것에 가깝다.

비록 좋지못한 모양새로 한국을 떠나게 되었지만 베어벡 감독이 한국축구에 남긴 족적은 결코 희미하지 않다. 코치로서 참여한 두 번의 월드컵은 말할 것도 없고, 베어벡 감독 시절에 발굴해낸 젊은 선수들이 이후의 올림픽팀과 A대표팀에서도 자리를 잡으며 한국축구의 중추로 성장했다. 특히 히딩크와 아드보카트 감독 시절에도 이루지 못했던 축구대표팀의 포백 수비 전술이 베어벡호 시절부터 대표팀에도 본격적으로 정착된 것은 큰 의미가 있었다.

베어벡 감독은 한국을 떠난 이후에도 한국축구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했다. 대표팀에서 코치와 선수로 처음 인연을 맺게된 홍명보 축구협회 전무를 감독 시절에 코치로 영입하기도 했으며, 각각 모로코와 한국 U23팀을 이끌고 참가한 2012 런던올림픽에서는 홍명보 감독에게 경쟁팀들에 대한 전력분석 자료를 제공하는 큰 도움을 주기도 했다.

베어벡 감독은 이후로도 해외무대에서 꾸준히 활동을 이어갔다. 2010 남아공월드컵에서는 호주를 월드컵 본선으로 이끌며 비록 16강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독일, 가나, 세르비아와 죽음의 조에서 1승1무1패로 선전했다. 2012년에는 모로코 U23 대표팀을 런던올림픽 본선으로 이끌었다. 비록 감독으로 메이저대회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이룬 것은 아니지만 애초에 비교적 전력이 떨어지는 팀을 맡아 본선무대까지 올려놓은 것만으로도 능력은 인정받았다고 할만하다. 건강 문제가 악화되기 전까지는 오만 대표팀을 이끌어온게 베어벡 감독의 마지막 커리어가 됐다.

베어벡 감독은 한국대표팀 사령탑 시절, 이름을 한국식으로 해석한 '곰가방'이라는 친근한 별명으로 불렸다. 역대 한국 사령탑을 역임한 히딩크가 '히동구', 아드보카트가 '아동복', 본프레레는 '조봉래'같은 현지화된 별명으로 불린 것과 같은 맥락이다. 베어벡 본인도 이 별명을 알고 있었으며 팬들의 애정으로 생각한다며 웃어넘기기도 했다.

2002 한일월드컵의 또다른 영웅 유상철 인천 감독이 최근 췌장암으로 투병중인 상황에서, 베어벡 감독의 별세 소식은 축구팬들의 마음을 또 한번 먹먹하게 하고 있다. 베어벡 감독은 떠났지만 그가 한국축구에 남긴 다양한 추억들은 이제 역사가 되어 팬들의 마음속에 남을 것이다. 베어벡 감독이 천국에서도 투병중인 유상철 감독과 한국축구의 미래를 위하여 함께 축복해 줄 것을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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