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시위대의 '검은 행진', 잠들었던 록밴드를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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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위대의 '검은 행진', 잠들었던 록밴드를 깨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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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일 150일을 맞은 홍콩 민주화 시위를 압축하는 수많은 기록 중 '검은 행진에 온 걸 환영해(Welcome To The Black Parde)' 만큼 강렬한 영상은 없다. 5분 가량의 영상 속 시민들은 '2047년 홍콩 학생들은 중국의 노예가 될 것이다'라 눈물 흘리며, '자유 없이는 죽음'이라는 결연한 의지를 다진다. 검은 복면을 쓰고 보호구를 착용한 시위대들의 행진 아래 장엄한 행진곡이 깔리고, 이들을 마주한 홍콩 경찰은 최루탄을 쏘고 곤봉을 휘두르며 무자비한 폭력을 행사한다.

거리는 불타고 동지들은 피 흘리며 쓰러지지만 시위대는 굴하지 않는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비장한 목소리, 경찰에 맨몸으로 맞서는 시위대의 항거가 이어진다. '우리는 계속 나아갈 것이다'라는 노랫말과 함께, 홍콩 민주화 시위의 상징 구호 '광복 홍콩 시대 혁명'의 깃발이 도시의 야경 위로 힘차게 펄럭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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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의 제목이자 바탕을 이루는 노래는 미국 록 밴드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대표곡 '검은 행진에 온 걸 환영해'다. 2002년 첫 정규 앨범을 발매한 후 사춘기의 여린 감성, 소외된 이들의 분노로 집약되는 이모(Emo) 감성을 대표하던 이 팀은 2006년 세 번째 앨범 <검은 행진>을 발표하며 약자들을 위한 송가를 완성했다.

'검은 행진에 온 걸 환영해'는 5분 15초의 대곡이다. 행진 밴드 풍의 도입부로 장대한 시작을 알리고, 직관적인 펑크 록으로 모든 울분을 토해내듯 달려 나가다 다시금 결의를 다지는 드라마틱한 전개를 자랑한다. 괜히 '이모' 버전의 '보헤미안 랩소디'라는 애칭이 있는 게 아니다.

어두운 주제를 노래하는 팀답게 곡의 테마 역시 '망자들의 행진'이다. 흑백의 뮤직비디오 속 밴드는 해골을 연상케 하는 제복을 입고, 임종을 앞둔 환자를 '검은 행진'의 일원으로 받아들여 행진한다. 모든 사라진 이들의 유지를 받든 제라드 웨이의 선언은 지금 들어도 참, 뭉클하다.

"아들아, 나중에 자라서
상처 입은 사람들, 다친 사람들, 
저주받은 사람들의 구원자가 되어주겠니?

우린 나아갈 거야, 
죽고 사라지더라도 믿어줘. 
당신의 유지를 계속 이어갈 거라는 걸."
- 'Welcome To The Black Parade' 중에서

마이 케미컬 로맨스는 2010년 네 번째 앨범 <데인저 데이즈>를 끝으로 2013년 공식 해체를 선언했다. 전작만큼은 아니더라도 큰 인기를 누리던 터였는데, 해산 이유를 명확히 전하지 않아 팬들의 안타까움이 컸다. 밴드의 리더 제라드 웨이가 여러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밴드 활동기 스트레스와 부담'을 원인으로 추측할 뿐이었다. 그렇게 검은 행진은 유지를 남기고 기억의 안갯속으로 사라졌다.

일부 음악 팬들은 마이 케미컬 로맨스를 저평가했다. '검은 행진에 온 걸 환영해'가 빌보드 모던 록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상업적 성공을 거뒀지만 유독 실력에 대한 갑론을박이 많았다. 과격한 하드코어 스타일 연주와 거칠고 음역대 높은 보컬 라인은 라이브 무대의 기복을 불렀다. 어찌나 '라이브 못하는 밴드'로 취급받았는지 "제라드 웨이는 '검은 행진에 온 걸 환영해' 후렴구와 영원히 싸운다"라는 농담이 나올 정도였다. '중2병' 감성의 유약한 이모 패션도 호불호를 갈랐다.

'숨어 듣는 노래'이자 '길티 플레져(Guilty Pleasure)' 였던 마이 케미컬 로맨스. 그러나 절박한 홍콩 시위대에게 '검은 행진에 온 걸 환영해'는 그들의 심정을 완벽히 대변하는 송가요, 투쟁가였다. '하나의 중국'을 절대 양보하지 않겠다는 중국과 홍콩 정부는 시위 초기부터 양보 없는 진압을 계속해왔다. 시진핑 국가 주석이 11월 4일 홍콩 행정 장관 캐리 람을 만나 '폭력과 혼란을 제압하고 질서를 회복하는 것은 홍콩이 직면한 가장 중요한 임무'라 강조한 것은 시위대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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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전 탄압을 위해 전진하는 홍콩 경찰의 폭력은 도를 넘고 있다. 10월 4일에는 52년 만에 '긴급 법'을 발동해 체포와 수색 과정을 크게 줄였고, 5일부터 공공장소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복면금지법'을 통과시켰다. 경찰들은 시위대를 '바퀴벌레'라 지칭하기도 한다. 현재까지 체포된 2000여 명의 시위대는 성추행과 고문에 노출되어 있다. 홍콩의 자유와 인권, 민주주의는 크게 훼손됐다.

시위대는 망자의 뜻을 이어 계속 나아가리라는 '검은 행진에 온 걸 환영해'로 홍콩의 암울한 현실을 알렸다. 그들의 절실함이 전해진 걸까. 10월 5일 시위대가 유튜브에 영상을 업로드한 후, 2009년 업로드된 '검은 행진에 온 걸 환영해'의 뮤직비디오 조회수와 '좋아요' 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11월 7일 현재 1억 2728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영상 중 가장 많은 유튜브 조회수를 기록한 노래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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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놀라운 소식은 마이 케미컬 로맨스의 재결합 소식이다. 팬들의 숱한 질문과 요청에도 침묵하던 밴드는 지난 1일 페이스북을 통해 재결합을 공식 선언한 데 이어, 단독 공연 일정과 뉴질랜드 투어, 다운로드 페스티벌 출연 소식을 차례로 알렸다. 사춘기 시절 마이 케미컬 로맨스를 '숨어 듣던' 팬들의 환호와 성원이 어마어마하다. 12월 20일 금요일(현지 시각)로 공지된 단독 공연을 곧바로 매진시켜버릴 정도다.

물론 홍콩 시위대의 영상이 마이 케미컬 로맨스를 다시 뭉치게 만든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무모하고 어설플지라도 과감하게 돌진하던 추억 속 밴드의 귀환은 어두운 홍콩의 현실에 작은 기적을 품게 한다.

누군가에겐 유치하다며 평가절하당했지만 누군가에겐 희망이었던 '검은 행진'. 마이 케미컬 로맨스도, 시위대도 함께 '계속 나아가길' 바라본다. 상처 받고, 다치고, 저주받더라도, 당신의 유지는 계속 이어지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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