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쁜 지도자 물리쳤더니 더 나쁜 사람이... 이 마을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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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지도자 물리쳤더니 더 나쁜 사람이... 이 마을의 비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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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영화 <델타 보이즈>, <튼튼이의 모험>, <다영씨> 등 새로운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관객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팬층을 확보하고 있는 고봉수 감독. 그는 짧은 기간 다양한 장르의 작품을 선보이며 최근 업계에서 주목받고 있는 인물 중 한명이다. 독학으로 영화를 배우고 초저예산으로 영화 만드는 법(그의 첫 장편 영화 <델타 보이즈>는 단 250만원의 제작비로 완성시킨 작품이었다)에 도가 튼 그가 이번 부산국제영화제에서 선보이는 작품은 <우리 마을>이다.

기존의 작업 방식에서 벗어나 예산은 물론, 처음으로 세트장에서 촬영까지 해봤다는 그의 이번 작품이 가진 강점은 역시 친숙하면서도 집요하게 파고드는 아마추어리즘. 분위기는 달라졌을지 모르지만 전작에서 보여줬던 매력은 잃지 않았다.

영화 <우리마을>는 고봉수 감독이 준비하고 있던 또 다른 작품 <봉수만수>로부터 시작된 작품이라고 한다. 한국형 히어로물에 가까운 <봉수만수>라는 영화를 준비하다가 작품이 계속해서 지연되자 그 사이 다른 작품을 만들어보고 싶어진 것. 이에 감독은 <봉수만수>에 등장하는 인물 '동렬'의 스핀오프 격에 해당하는 영화를 기획했고, 그것이 이 영화 <우리 마을>이 된 것이다. 영화가 탄생하게 되는 배경 또한 예사롭지 않다.

영화는 어느 산골마을을 지배하며 군림하고 있는 악당 만출과 우연히 그 마을에 들어서게 된 동렬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마을 사람들의 식량을 수탈하고 괴롭힌다는 만출의 악행을 전해들은 동렬은 단박에 그를 처단하고 마을의 신임을 얻게 된다. 마을 사람들이 알지 못한 것이 있었다면, 동렬 또한 만출과 다르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 오히려 더 집요한 방법으로 마을을 괴롭힌다. 이에 마을 이장은 다시 한번 그를 처단해 줄 사람을 찾기 시작하고, 마을은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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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그동안 고봉수 감독의 영화들이 그랬듯이 이번 영화 <우리 마을>도 시작부터가 예사롭지 않다. 독재자, 추격자, 은둔자, 최강자, 총 4막으로 이루어지는 이번 영화는 감정을 최대한으로 절제한 상태에서 만담의 형식을 빌어와 극을 진행해 나간다.

특히 영화 1막의 초반부에 등장하는 동렬과 태식의 대화 장면은 이 영화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함축적으로 전달한다. 고정된 카메라 앵글 속에서 동작을 최소화하며 관객들이 대사에 집중하도록 만드는데, 그 대사 역시 장황하지 않고 간결하다. 약간의 B급 감성과 함께 유치할 정도의 대사들이 연이어 계속되지만, 아무렇지도 않게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에서는 진지함이 묻어나오니 장면과 대사의 부조화에서 발생하는 부조리가 관객들의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다.

극 속에서 4개로 나뉘어진 막, 그 막을 상징하는 소재들 역시 흥미롭다. 기승전결에 해당하는 네 파트의 타이틀은 각각을 잘 상징하고 있으면서도 은유적인 지점이 있어 영상이 시작되기 전에 흥미를 이끌어내는 요소로 명확히 활용된다.

가령, 3막의 타이틀인 '은둔자'에서는 전국 팔도를 돌아다니며 새로운 악당에 해당하는 동렬을 저지할 실력자를 찾는 에피소드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4막인 '최강자'에서는 생각지도 못한 인물이 등장해 극 전체를 마무리하는 형식으로 어떤 인물이 최강자가 될 것인가에 대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킨다.

각각의 소재가 '어떤 사람'을 상징하는 단어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 역시 전체의 분위기와 적절히 상응하는 부분이 있다. 이 영화의 기본적 뼈대가 배경이나 상황에 있기 보다는 인물에 있다는 것을 은유적으로 전달하는 느낌도 없지 않는데, 이 역시 고봉수 감독이 그 동안 보여온 작품들과 유사한 방식이다. 전작인 <다영씨>의 경우에도 대사 없이 배우의 과장된 연기와 캐릭터 특성에 기대는 모습을 보인 바 있었고, <델타 보이즈>나 <튼튼이의 모험>에서도 감독이 만들어내는 인물들의 면면은 작품 속 그 무엇보다도 선명하고 강렬했다. 이번 작품에서도 그의 그런 장점들이 십분 발휘된다.

03.

이번 영화에서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인간의 탐욕을 자극하는 계급과 권력의 속성과 그를 따르고자 하는 인간의 욕심에 대해서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듯 보인다. 다만, 감독의 전작들에서 넌지시 비춰지던 것과는 또다른 강도의 접근이며, 이를 희화화하는 방식으로 드러낸다는 점이 눈에 띈다. 힘있는 대상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별하여 대우하는 이장의 모습이나 처음에는 그렇지 않았지만 점차 탐욕스럽게 변해가는 동렬, 영화의 처음과 마지막에서 반복해서 등장하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이 바로 그렇다.

그 중에서도 마을 사람들의 모습은 간략하고 우스운 방식으로 표현되지만 그 속에 내포하고 있는 것은 훨씬 더 진하다. 새로운 권력자를 위해 밥상을 차리라는 이장의 지시 아래 어쩔 수 없이 준비를 하기는 하지만 불편한 기색과 반감을 숨기지 않는 모습. 여기에 그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치미를 뚝 떼고 뒤에서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이장의 모습은 함께 어우러져 권력의 수직적 속성을 그대로 드러낸다.

이 작품에서 권력적 구조의 희화화는 이미 완성된 권력을 우회적으로 비판하는 것과 동시에 작품 속에서 무너뜨리는 역할도 수행한다. 변해버린 동렬의 폭정을 견디지 못한 이장이 그에게 마을을 나가줄 것을 종용하고 이에 반한 그가 일어나 고정된 카메라 밖으로 나가며 묘한 부위를 관객들이 지켜보게 되는 것 또한 동일한 맥락의 표현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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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

그러니까,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작품이 시작부터 끝까지 관객의 집중을 놓치지 않을 수 있는 것은 오락적 요소를 위해 마련된 장치들이 적재적소에서 제대로 활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대표적인 것이 반복을 통한 웃음 유발과 먼치킨(상식을 벗어날 정도의 능력을 가진 캐릭터)의 활용이다. 이러한 종류의 장르물이 필요로 하는 의외성, 그 의외성을 극에서 이끌어내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이다. 특히, 이 작품에서 소개된 먼치킨 속성의 캐릭터는 이 영화의 경계 내에서 만이 아니라, 본편 격이 될 <봉수만수>에서도 의미 있게 활용될 것이다.

고봉수 감독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영화의 깊이와 무관하게 하나의 작품이 가질 수 있는 속성과 더불어 동일한 감독이 보여줄 수 있는 장르의 범주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완전히 다른 쪽에 있는 것처럼 여겨지는 진지함과 우스움, 슬픔과 기쁨과 같은 속성들을 하나의 작품은 물론, 자신의 필모그래피 전체에서 조금의 어려움도 없이 자유롭게 보여주고 있는 감독이 바로 그이기 때문이다.

이미 그에게는 '고봉수 사단'이라고 불리는 현실 속 세계관이 존재한다. 앞으로는 그의 작품 세계들까지도 하나의 세계관을 형성하는 모습, 혹은 여러 작품이 모여 하나의 커다란 유니버스를 구성하는 모습을 만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다른 작품의 스핀오프로 시작하기는 했으나 하나의 개별적 작품으로도 다른 작품에 뒤처지지 않는 영화 <우리 마을>. 이 작품은 감독의 또다른 시작이자 새로운 도전으로 기억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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